그래, 모든 이들의 젊음은 꿈이야.

일종의 화학적 광기야. 미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인간이 같은 강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잔인하도록 슬픈가.

이미 많은 것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절로 변해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한 아이러니를 품고 인생은 또 흘러간다.

직사각형의 유리창을 보자 커다란 어항안에 갖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자는 어항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엄마를 만나고 나면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듯이 어둡고 뻥 뚫린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나면 그다음에 할 일이라든가,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저절로 알게 될 것만 같았다.

오래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나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바짝 마른 입술만 깨물었다.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을 내 안에 영원히 가둬두려는 것처럼 너는 내 말을 가로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조리개의 움직임을 따라서 하나의 세계가 닫히고 다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 장면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내 안에 박혀 있을 거라고는, 그때의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공항에 있는 사람들은 떠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나는 떠날 사람이 누구인지 골라낼 수 있었다. 바퀴가 달린 가방이나 유난스러운 옷차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떠날 사람은, 뭐랄까, 떠날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이 잠을 청하는 것으로 허비되고 있다.

이 나이쯤 되면 잠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되길 바랐는데.

그리고 나도 어느새 그 대륙에 도착해버렸다.

'야 뭐 재밌는 거 없냐'의 세계. 운이 좋았다면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다다르게 된다. 이 회색의 대륙에.

메시지가 촌스러워서 더 좋았다.

나는 촌스러운 것이 좋다. 그래도 웃으면서 지내자, 사람이 소중하다, 이런 것들.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들. 명쾌해서 좋았다.

추운 겨울에 외투가 없다면 아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겠지.

그런데 외투를 두 벌 샀다고 두 벌분의 행복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셈법이 이상하다는 증거이다.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외투는 진열장에서 이동하여 내 방 옷장에 걸리는 순간 보통의 외투가 되었다.

아, 적당함이란 얼마나 충족시키기 어려운 가치인가.

적당함은 분명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길 앞에 놓여 있는 돌을 치우면 다른 돌이 또 나타난다.

그 돌은 더 크고, 더 단단히 땅에 박혀 있다. 계속 이렇게 돌밭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 안의 중학생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 열심히 하면 돌이 없는 또는 돌이 굉장히 적은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른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왔기 때문이다.

좋다는 게 무엇이었지, 만족이라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이었지.

내용이 전부 바뀌어버린 사전을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백지였다. 나는 단어의 정의를 잃은 사람 같았다.

당신은 마지막 순간에 소중한 사람이나 둘도 없이 귀한 것들을 깨달았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알았어요.

자기가 사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새삼 다시 바라보는 세상은 설령 따분한 일상이었지만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만으로도 내가 찾아온 의미는 있었을지 모르지.

내가 없애버릴 수도 있는 것들.

이것들이 사라져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양상추가 양배추가 어머니가 사라진다면. 그런 상상을 하지 못했던 무지하고 어리석은 나. 그러나 지금은 안다. 세상에 뭔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있어도 사라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을.

그 사랑이라는, 인간 특유의 귀찮고 거추장스럽고 그러면서도 인간을 절대적으로 지탱해주는 그것은, 시간과 아주 비슷하다.

시간, 색, 온도, 고독, 사랑. 인간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들. 인간을 규제하면서도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들. 그런 것들이야 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고, 미래에서 현재로 흘러온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분명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무한한 미래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미래가 유한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내 안에서는 미래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나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평화가 시간이라는 규칙이 사라져서 만들어진 것인지, 평소부터 여기에 있었던 것인지 나로서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다만, 시계가 사라진 세상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자, 왜 그런지 아주 평온하고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우리는 스물여섯 시간 동안 이별의 예감을 공유해갔다.

신기한 일이다. 시작의 예감이 두 사람 사이에 공유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이별의 예감도 동시에 공유해갔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겠지."

당연한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인간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뭔가를 얻으려고 한다. 그 정도면  그나마 낫다. 지금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뭐든 손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들 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로채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누군가가 얻고 있는 그 순간에 누군가는 잃는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위에 성립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그런 세상의 룰을 들려주었다.

나는 아직 서른 살이다.

지미 헨드릭스나 장 미셸 바스키아 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채 이루지 못한 뭔가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을 위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나는 문득, 아까 나온 편의점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손과 발도 편의점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자, 유리창 속의 내가 비로소 의미 있는 생물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