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없어. 다음 모퉁이를 돌았을 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 모퉁이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어. 짐작도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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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으니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평범해지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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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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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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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내 인생은 당신에 대한 회한과 배덕의 자책감으로 지배되겠지. 마음속으로 사과한다 한들 용서해주는 당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그쪽에서 당신이 나를 얼마나 욕하고 동정하든, 그 목소리 역시 내게는 들리지 않고. 인간은 죽으면 그뿐이지. 우리는 둘다 살아 있는 시간을 너무 우습게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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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하게 된다. 사치오에게는 이미, 그 정도로 해두는 게 좋다고 옆에서 훈계해주는 어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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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아니면 붙잡을 수 없는 곳에 서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슬아슬한 벼랑에서, 누가 어깨를 잡아줘서 겨우 걸음을 멈추는 때도 있는 겁니다. 아, 그러니 나 같은 사람도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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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소중한 것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지. 눈에 보이는 신호를 무시하고, 잡았던 손도 놓아버리고. 언제나 기회를 날려버리죠. 왜 이렇게 맨날 헛발을 디디고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지. 정말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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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그 손을 꼭 잡고 함께 도망친다. 그들만 있으면 자신에게도 도망칠 권리가 생긴다. 살아 있어도 좋은 이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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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형편없는 것도 아니고. 내게도 기회는 있어. 사람을 우습게 보면 안 되지. 당신의 죽음은 폭력이야. 나는 폭력에 굴하지 않아. 징징 짜면서 구질구질하게 살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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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신페이라는 어린아이가 지금의 자신에게, 지금까지 만난 어떤 인간과도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한 건 아직은 자신이 그의 보호자라는 우위를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누군가에게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 또 자신이 '지켜주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얼마나 감미로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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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해야지. 그런 걸 정답이라고 하는 곳에 살 필요는 없어. 네가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게 정답이야. 대세가 전부는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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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에게 애정 비슷한 걸 느끼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래서 가장 위로받는 사람은 엄마 잃은 그 아이들도, 위험 분자 아버지도 아닌 쓰무라 본인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을 사랑함으로써 지금까지 자신이 저질러온 양심에 찔리는 온갖 일들을 꿈처럼 잊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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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무라 씨의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저 납덩이같은, 빛이 없는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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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와 반비례하듯이 어느 부분은 쇠퇴하고 급기야 죽음에 가까워지고요. 그들 둘과 지내는 시간에는 똑같은 시간이 절대 없다는 것을, 나는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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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충실하게 생활했던 나쓰코는 나를 암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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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쳤다기보다 1시간 간격으로 시계가 울어댔으니 알면서도 그런 것이다. 혼자서 그 밤길을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엉덩이를 들지 못했다. 두 녀석이 잠든 뒤 요이치 씨는 봇물이 터진 듯 유키 씨 얘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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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다 잃어버리는 거지. 세계의 진화 따위보다는 보이는 걸 제대로 보는 게 사실은 더 어려운 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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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살았던 기억을. 나는 욕실 청소를 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내 생활의 기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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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행복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계속되지 않으면 불만을 느끼고. 행복은 불행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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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오는 신음하듯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웬일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두 남자는 차들이 쌩쌩 오가는 큰 길가에서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빈 차' 불을 켠 택시가 그들 옆을 몇 대나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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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생활 전부, 아이들을 따라 시간이 흐르고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때로 아빠가. 정확하게 움직이는 시계처럼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그러나 매일 앞을 향하고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축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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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진다. 요이치는 유키가 미웠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제멋대로 갑자기 죽어버린 유키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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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었다는 명확한 자각은 거의 없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치 강 건너 어딘가에 사는 사람들만 같았지, 자신이 그 강을 건너게 되리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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