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육상선수 같았다.

운동 하듯 섹스에 힘썼다. 주위 사람들에게 섹스에 대해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섹스란 단순히 번식 행동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오히려 숨기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어쩐지 홀딱 벗겨져서 황량한 벌판으로 내쫓긴 기분이었다.

뿌리부터 뽑혀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 버려진 잡초 같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잃었다. 돌아갈 장소가 사라졌다. 혼자서 살아갈 자신은 조금도 없다. 생활이나 돈 문제가 아니었다. 나나미에게서 미나가와 일가라는 가정이 소멸되었다. 그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글에도 '좋아요'가 연속적으로 달렸다.

'결혼 활동 편' 안에서 한바탕 축하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나나미는 그런 상황이 이상하게 거짓말처럼 느껴졌고 자신의 글도 거짓말 같았다.

유럽의 거리는 대체로 통일감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곳은 유럽같지가 않다.

만약 여기에 어떤 통일감이 있다면 그것은 추악함과 빈곤함이다. 인구가 늘어나자 어쩔 수 없이 즉흥적으로 집합주택을 급하게 세웠다는 느낌이다.

나나미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거짓으로 치장된 연극의 막이 올랐다.

아빠의 손에 이쓸려 버진로드에 발을 내딛었다. 예배당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나나미는 현기증이 났다. 다홍식 버진로드를 한 발씩 힘주어 내딛었다. 바늘방석 위를 맨발로 걷는 마음이었다.

아, 이제 이 계정은 못 쓰겠구나.

애착이 가는 계정이었다. 지금까지 여기서 쌓은 인간관계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오늘로 끝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SNS의 관계란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가. 계정을 일부러 삭제하지 않아도 글을 입력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곳에서 사라진다.

맞선 사이트에서 남자친구를 발견했다.

어쩐지 너무나도 쉽게 손에 넣었다. 인터넷 쇼핑을 하듯이 간단히 한 번의 클릭으로.

나나미는 거짓말을 할수록 우울해졌다.

거짓말 위에 거짓말이 계속 쌓여 갔다. 흡사 범죄자 같았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가뜩이나 결혼이런 이상한 관습이다. 특히 여성에게 결혼은 마치 어떤 벌처럼 느껴졌다. 정든 장소를 버리고, 과거를 버리고, 이름까지 버리고, 믿어도 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남성에게 인생의 전부를 맡긴다. 이게 범죄자라면 얼마나 나쁜 짓을 해야 이런 벌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나나미는 우울해졌다.

나나미는 데쓰야에게 안내 책자를 펼쳐 보였다.

아무로가 소개해 준 서비스의 안내였다. 사람을 속이는 종류는 아니었다. 이 서비스라면 말해도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이걸로 거짓말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지만,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신중하지 못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어떤 최상의 요리도 지금의 나나미에게는 단순히 살기 위한 식량이었다. 어떤 요리도 살아가기 위한 식량을 당해낼 수 없으며, 살아가기 위한 식량보다 귀한 요리가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다.

나나미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데쓰야는 눈물로 흠뻑 젖은 나나미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나나미는 계속 울면서 데쓰야가 눈물을 닦아 주는 대로 있었지만, 이 눈앞의 남성과 결혼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감격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더 이상 취직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나나미는 깨달았다.

니타도리는 분명히 내가 위로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어서 그 상대를 찾았는데, 오늘 우연히 내가 붙잡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알았다.

사랑이 슬픈 건 사람이 어긋나서가 아니라 시간이 어긋나서라는 것. 그리고 한번 어긋난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이 순리다.

왜냐하면 걸작이란 혼자서 외톨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단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경험이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오 하고 나는 말할 겁니다. 그 말을 고귀하게 들리게끔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오로지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이 스스로 소유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책상으로 가로질러 가서 '여성과 픽션' 이라는 제목이 쓰인 종이를 들어 올리며 생각했습니다만,

내가 여기에 스게 될 첫 번째 문장은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합니다. 여성이 어떤 불평을 조금이라도 강조하거나, 정단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대의를 변호하는 것, 어떤 식이건 여성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치명적인 입니다. 여기서 '치명적'이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의식적인 편향성을 가지고 쓰인 것은 필연적으로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비옥해질 수 없지요.

마음이란

확실히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전적으로 의존하는, 참으로 신비로운 기관입니다.

메리 카마이클이 우리에게 속임수를 쓴 것이 확실하다고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왜냐하면 전향선 철로에서 아래로 내려갈 거리고 예측했던 차가 궤도를 벗어나 다시 위로 올라갈 때의 기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메리는 예상된 연속성을 함부로 바꾸고 있었지요. 처음에는 문장을 부수어놓고 이제는 연속성을 부수어버렸습니다. 종습니다. 부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면 그런 일을 할 만한 권리가 있지요.

그녀는 자신의 기질이 명하는 대로 때로는 유순하고 소심하게, 때로는 분개하고 역설하며 그 비판에 대처했습니다.

어느 쪽을 택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사물 자체가 아닌 어떤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소설은 어느 부분에선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지나친 긴장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비틀거리게 됩니다. 통찰력이 흐트러지며 더 이상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아주 다양한 기능들을 사용해야 하는 그 막대한 노동을 지속할 만한 힘을 더 이상 끌어낼 수 없는 것이지요.

만일 제인 오스틴이 그녀의 상황에서 어떤 것으로든 고통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부과된 삶의 협소함이었을 겁니다.

여성이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그녀는 단 한번도 여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런던 시내를 다닌 적도 없고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사 먹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 제인 오스틴의 성격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하여 18세기 말 무렵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데, 내가 만일 역사를 다시 쓴다면 십자군이나 장미전쟁보다 그것을 더 충실하게 묘사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즉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현대의 숱한 고백문학과 자기분석 문학을 보건대, 천재적인 작품을 쓰는 것은 거의 언제나 막대한 시련의 위업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지요.

위대한 작품이 작가의 마음에서 완전하고 총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가성을 거스르는 것들은 도처에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 물리적 환경이 그것에 적대적이지요. 개들이 짖을 것이고 사람들이 방해할 것이며 돈을 벌어야 하고 건강은 악화될 겁니다. 게다가 이 모든 곤경을 가중시키고 더욱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세상의 악명 높은 무관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