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빛이라도 카이로의 빛은 모든 것을 소상히 밝혀주는 듯한 쾌청함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빛은 그림자조차 조심스럽게 지면에 길게 누운, 즉 어떤 정서가 있었다.

휴대전화와 메일이 생기고 나서 약속 장소를 정하는 사정은 상당히 변했다.

시간도 장소도 대충만 정해놓고, '그럼 나중에 도착하면 또 전화할게'라는 식이 일반적이다. 그에 익숙해지니 '정말이지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휴대전화의 출현과 함께 타인과 만날 약속을 할 때의 정취 같은 것은 사라졌다.

아들로서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어머니의 경우 행복해지겠다는 의지가 지나치게 강했다. 어머니의 강고한 의지는 주위 사람들을 말려들게 하여, 특히 오사다 씨 같은 마음씨 고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나는 이 현상으로 세상 물정을 분석할 수 없다.

아마 평론가라면 이것저것 분석하겠지만, 사실은 평론이 가장 수상쩍다. 내 뇌는 분석이나 평론을 하지 않는다. "우와, 진짜 대단하다!"라는 게 가장 감탄했을 때의 표현이다.

그녀가 나를 안 사랑한다고 했다.

말의 힘은 강했다. 그 말을 듣자 단숨에 삶의 의지와 희망이 사라졌다. 단 하나의 희망이 있었다면, 그녀에게서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뿐이었다. 그럼 모든 게 제 자리로 돌아올 것 같았다.

상품에서 중요한 건 역시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캐릭터에는 다들 결점이 있죠. '도라에몽'은 쥐를 무서워하고 꼬리를 잡아당기면 전원이 꺼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이 있기에 스토리가 탄생됩니다. 감정이입도 가능해지고 말이죠.

누나 결혼식이 있어서 고향에 다녀왔다.

결혼식이 끝나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망쳐 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티라미스를 한 입 베어 물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누나가 예뻤다.

지갑을 열었는데 현금이 많아서놀랐다.

어제 우루루 모여 먹고 친구들에게 거둔 현금들. 아버지 핸드백에 든 두툼한 현금을 보면 어린 마음에 '당분간 우리 가족은 문제 없다'고 생각했었다. 현금이 주는 안도감이란.

행복을 좇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행복하길 바라는 건 당연하지만, 어쩐지 현대인이 행복을 바라는 태도에는 필사적인 면이 있다. 행복을 좇는 건 상대적 불행의 증거다. 인간의 욕심에 끝이 없듯, 행복을 바라는 욕심 또한 끝이 없다. 그래서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클수록 그것과 멀어지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다.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숨어 있는 필요를 끌어내 문제의 핵심을 찾는 일입니다. 진짜 좋은 아이디어란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점점 파생되어 널리 퍼져나가는 아이디어입니다.

이런 게 인생일까.

K는 생각한다. 어차피 패는 처음에 정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패는 아마도 세 끗쯤 되는 별볼일없는 것이었으리라. 세 끗이 광땡을 이길 가능성은 애당초 없다. 억세게 운이 좋아서 적당히 좋은 패를 가진 자들이 허세에 놀라 죽어주거나 아니면 두 끗이나 한 끗짜리만 있는 판에 끼게 되거나. 그 둘 중의 하나뿐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을 간단히 먹고 방을 청소했다.

매일 청소를 하니 깨끗한 채일 거라고 생각해도 막상 해보면 어딘가 더러워져 있었다. 방 구석에는 솜먼지가 모여 있고 화장실 변기에는 얼룩이 생겼으며 욕실에는 머리카락이 쌓여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자신이 살아 잇다는 것을 생각했다. 매일 나는 뭔가를 배출하고 있었다.

이모가 고른 것은 맥락이 없었지만, 맥락이 없었기에 진지함이 있었다.

이모는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해 그것들을 흡수했던게 아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위해 예술을 이용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이모는 자신을 위해 어쩌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만 그것들을 원했다.

존재감 없는 아버지라고 생각했었으나 아버지의 존재는 컸다.

어머니는 아버지라는 남자에게 마음을 쓰며 생활했다는 것을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이기 이전에 괜찮은 여자로 있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