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엄마와 살았던 기억을. 나는 욕실 청소를 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내 생활의 기억은?

어른들은 다 그래.

한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행복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계속되지 않으면 불만을 느끼고. 행복은 불행의 씨앗이다.

뭐 때문인지…….

사치오는 신음하듯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웬일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두 남자는 차들이 쌩쌩 오가는 큰 길가에서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빈 차' 불을 켠 택시가 그들 옆을 몇 대나 지나갔다.

아이들과 별 인연 없이 생활하는 어른에게는 조금 낯간지럽고 숨이 막힐 듯 달짝지근한 냄새.

이 집의 생활 전부, 아이들을 따라 시간이 흐르고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때로 아빠가. 정확하게 움직이는 시계처럼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그러나 매일 앞을 향하고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축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죽는 게 두려우면 사는 것도 두려워진다.

성실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진다. 요이치는 유키가 미웠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제멋대로 갑자기 죽어버린 유키가 미웠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이 사치오 또한 큰 재난의 피해자에게 남들처럼 안됐다는 마음과 동정을 품을 수는 있었지만,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었다는 명확한 자각은 거의 없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치 강 건너 어딘가에 사는 사람들만 같았지, 자신이 그 강을 건너게 되리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적막함이 훨씬 뼈에 사무칠 줄 알았다.

그런데 사고 이후 기누가사 사치오의 일상은 온갖 절차와 정리에 쫓겨 분주하게 흘러갔다. 모든 것이 기누가사 나쓰코의 죽음에 관계된 일이었음에도 사치오는 나쓰코가 여행을 떠난 채 어쩌다 돌아오는 길이 늦어지고 있을 뿐인 듯 생각되었다.

빨갛게 핏발 선 그 눈은, 우리의 나쓰코를 함부로 태우다니,

당신 같은 박정한 남편보다 우리들이 훨씬 더 나쓰코를 소중하게 여겨 왔는데, 하고 말하고 있었다.

참고인 조사가 끝나 준비된 차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기누가사의 등을 쳐다보면서도 형사는 감정이랄 만한 것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슬픔도 절망도, 피로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본인조차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한없는 무색투명함을 짊어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사치오와 나쓰코의 대화가 따분하게 이어지지 않을 때는 늘 이런 식으로 전개되다 끝나버린다.

돌이킬 수 없는 침묵을 깨뜨리지 못한 채, 잠시 후 사치오의 머리는 말끔하게 손질이 끝났다.

불확실한 것과 희망적인 예측을 쉽게 말하지 않은 것이 모토모 씨의 장점이었고, 나는 그런 점을 또 좋아했다.

사막처럼 메마른 정직함. 해가 뜨면 뜨거워지고 해가 지면 얼음처럼 차가워질 뿐. 거짓도 없었지만 친절함 역시 한오라기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만큼 자신은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길고 긴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나라는 남자의 따분함을 무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줌파 라히리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 중에서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가장 사랑한다.

개인적인 사랑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뿐,

그것은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다.

한편, 어른이 되면 '신뢰'를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단순히 친하거나 자주 시간을 같이 보내거나 재미있게 어울리는 관계와는 다르다.

세상에는 혹시 모성애라는 종교가 있는 게 아닐까.

모성애를 믿으십쇼. 천국이 가까이 있습니다!

이미 바짝 말라 버석이는 묵은 감정의 먼지들 위로 작은 불씨가 떨어졌다.

가장 젊고 아름답던 시절은 그렇게 허망하게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이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 주었다.

아무것도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었고,

온몸과 마음으로 앓고 있는 어머니 곁에는 위로해 줄 가족이 없었다. 어머니는 혼자 병원에 가서 김지영 씨의 여동생을 지웠다.

그래도, 나는 지금 발버둥 치고 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생에 발버둥 치고 있다. 예전에 내가 결심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발버둥 치는 것. 살아가는 것. 숨을 쉬고 걷는 것. 달리는 것. 먹는 것. 맺는 것. 어디에나 있을 법한 마을의 풍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 듯, 어디에나 있을 법하게 살아가는 것.

대기에 가득 찬 습기 덕분인지 눈이 흩날리는 거리는 묘하게 따뜻했다.

나는 문득 잘못된 계절에 발을 헛디딘 듯한 불안을 느꼈다.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언가 소중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쳐다보게 된다.

모래성이 다 허물어진 후에는 사라지지 않는 덩어리가 하나 남기 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아쉬움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 순간에 나는 깨닫는다. 앞으로 내게 남은 것은 이 감정뿐이라는 것을. 누군가 억지로 맡긴 짐처럼 나는 아쉬움만 떠안는다는 것을.

학교 끝나고 엄청 재미있게 놀고 나서 슬슬 집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올 때 더 있고 싶어서 아쉬워하던 느낌.

어릴 때 느꼈던 그런 기분을 문득 느끼며 나는 미츠하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