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하가 웃으면─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세상 모든 것이 함께 기뻐하는 것만 같다.

얼굴을 본다고 생각했는데 내 시선은 츠카사를 스쳐 지나가고 그 뒤에 있는 고등학교도 스쳐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벌니다.

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을텐데 내 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 녀석이 살아 있지 않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것은 생명 그 자체였다. 미츠하는 현실이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노을은 이미 사라졌다. 일등성이 몇 개 떠 있고 제트기가 희미한 소리를 내며 날고 있을 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혜성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선배는 모든 것을 대가 없이 그저 주고 싶어지는 최고의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가 오늘 도쿄에서 본 것 중 가장 고귀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여기가 단지 소설 속의 세계라고 하면 어떨까.

독자가 보자면 나나 당신들이 있는 이 세계는 가능세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겠지. 당신들도 알잖아. 여기가 소설 속의 세계라는 것을.

당신들의 절멸은 참으로 아름다워.

당신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내 눈에는 참으로 아름답다는 말이야. 당신들에게는 그걸 위안으로 삼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겠군.

당신이 사고해야 하고, 그을 써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은 대체 누가 내린 지령인가,

그 정당성은 어떤 것인가, 이런 물음이야말로 참으로 열린 질문이지.

그런데 당신들의 이 나라는 이제는 거의 무종교 국가여서 그런 일이 없잖아.

애초에 신이 800만이나 있는 다신교 국가인 데다 불교, 기독교, 옴진리교까지 있으니 거의 무종교나 마찬가지지. 그런 나라라는 사실에 당신들은 도리어 기뻐해야 하지 않나?

"그랬구나. 선생님은 신이셨어."

잠시 후 다카스키 미네코는 몹시 감동한 얼굴로 교수를 보았다. 신이니 예언이니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지 않지만, 왠지 믿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세계에 그 정도는 존재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기이한 일이 생기면 나는 왠지 도리어 마음이 편해진단 말이야.

'아직도 영문 모를 일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나 미래를 꼼꼼하게 계산하고 분석해서 결정하고 마는 나쁜 버릇이 있어. 자기 일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야.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자"라고 말하고 두 사람은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은 온갖 꿈을 꾸었는데, 자신들이 하려고 하는 행위를 노골적으로 정당화하는 장면들이 여러 꿈에 조각조각 박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더 질투하는 엄마랑 살거야.

더 질투한다는 건 더 사랑한다는 거니까.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인지 모를 곳을 향해 그저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서 애타게 미도리를 불렀다.

또 가을이 왔다.

바람 냄새나 햇빛 색깔이나 길섶에 핀 작은 들꽃이나 조그만 소리의 울림이 나에게 가을 소식을 전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와 죽은 자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기즈키는 열입곱인 채로, 나오코는 스물하나인 채로. 영원히.

그러니 그 누구의 눈길도 의식하지 말고, 이러면 행복해질 것 같다 싶으면 그 기회를 잡고 행복해져요.

경험적으로 볼 때 그런 기회란 인생에 두 번 아니면 세 번밖에 없고, 그것을 놓치면 평생 후회하게 되요.

그러나 그것이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할 어떤 종류의 책임이란 것만은 알아.

나는 그 책임을 내팽개 칠 수 없어.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 설령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오이를 아작아작 씹노라니 세상을 떠난 미도리 아버지가 떠올랐다.

미도리를 잃고 내 생활이 이렇게나 아무 맛이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하니 슬픈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에서 그녀의 존재가 점점 부풀어 오른 것이다.

나오코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나는 멋지고 기분 좋고 아름다운 것만 가려서 썼다.

풀냄새, 신선한 봄바람, 달빛, 영화, 좋아하는 노래, 감명 받은 책 같은 것에 대해 썼다. 그 편지를 다시 읽어 보고 스스로 위로 받았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에 사는가를 생각했다.

난 이제 십 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감이란 것을 느껴. 봐, 기즈키, 난 이제 너랑 같이 지냈던 그 때의 내가 아냐. 난 이제 스무 살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불현듯 앞으로 이런 일요일을 도대체 몇십 번 몇백 번 반복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이라고 나는 입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일요일에 나는 태엽을 감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그 작은 세계에서 멀어질수록 그날 밤의 일이 진짜로 있었던 건지 아닌지 점점 알 수 없었다.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분명히 그랬던 것 같고, 환상이라 생각하면 환상인 듯했다.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세부까지 생생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오코의 몸도 달빛도.

"아마도 아직은 이 세상이 낯설어서 그럴 거야."

나는 조금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여기가 진짜 세계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사람들도 주변 풍경도 왠지 진짜가 아닌 것 같아 보여."

나는 몇 번씩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의미 없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중력이 다른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래, 이게 바로 바깥 세계인 거야, 하는 생각과 함께 슬픔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