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결심은 얼마나 불문명한 토대 위에 서 있는가.

의지와 결심이 내일을 바꿀 순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지금의 모습을 반성하고 변화를 꿈꾸고 뭔가를 결심하는 것일까. '어떤 의지'와 '어떤 결심'은 내일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족 중 누군가의 병간호를 오래하는 사람들이 지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거든. 죄만으로는 절대 지치지 않아. 죄만으로는 절대 다치지 않지. 그건 오히려 힘이 되기도 하니까. 정말 힘든건 형... 죄와 죄의식의 끝없는 반복이야. 어서 죽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제 그만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었던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 그걸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거지.

어딘가 먼 곳에서 사람들의 즐거운 말소리가 꽃 이파리처럼 부드럽게 바람에 실려왔다.

어떤 나쁜 놈을 찾아 내가 복수할 수 있었겠는가? 얼어붙은 땅바닥 위에 주저앉아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만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나는 열여섯의 소년이었다.

진정한 위로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거죠.

각자의 사정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그녀와 저는 서로의 모난 마음을 주고받으며 매끄럽게 다듬었어요. 어쩌면 저는 대화보다 위로가 필요했던지도 모르죠.

젠장, 또 송년회다.

이번엔 학원 전체 송년회란다. 이 나라 사람들은 가족들도 없는 인간들이 맞는 거 같다. 매일 술을 마시면서 송년회라고 또 마신다. 오늘은 양주에 와인,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셨다. 비빔밥이 유명한 나라라더니, 과연 뭐든지 비비고 섞는 거 하나는 끝내주는 거 같다.

필름카메라를 샀습니다.

대학생 때 DSLR로 사진을 꽤 찍었는데, 취업준비하며 '도대체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안 찍게 되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제게 판 분께 이 얘기를 했더니 '사진을 찍었던 사람은 결국 다시 사진을 찍게 되죠.'라고 담담히 말하더군요. 맞는 말이네요. 이게 무슨 소용이든, 다시 찍고 싶어졌습니다.

신부는 큭큭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좀 난감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대학 친구 재만이가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간다기에, 그것도 열한 살이나 어린 신부를 맞이한다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사회를 보겠다고 나섰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이게 왜... 이런 일들이 생긴 거죠?"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남자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글쎄요.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남자는 그 말을 남긴 채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결코 굽힐 수 없는 것 하나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는 전부 바꿀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 이런 식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도 제 방식 중 하나입니다. 결코 굽힐 수 없다고 선택된 요소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심플한 것이라야 합니다.

우리가 디자이너라 불리는 까닭은

새로운 시점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형태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단지 그 이유 때문입니다. 형태를 만드는 까닭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더 쉽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죠.

넌 뭔가를 착각하는 것 같은데,

사람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럴 만한 때에 이르렀기 때문이지 누군가가 상대에게 이해받기를 바라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꼬박꼬박 술을 마시는 김상국 씨는

또 그만큼 많은 횟수의 대리기사 서비스를 이용하곤 했다. 그런 김상국 씨가 지난주에 만난 육십대 중반의 한 대리기사는 양복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왠지 모르게 사람을 긴장시키는 흡사 '교장 선생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뭐든지 자연스러운 그대로가 좋다.

그래서 "아, 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배가 나와 큰일이라니까"라며 큰 소리로 떠벌이는 남자를 볼 때면, 저 사람 플레이보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땅은 잘 파지지 않았다.

삽날이 언 땅을 때릴 때마다 둔탁한 쇳소리가 어두운 전나무 군락지 너머로 길게 퍼져 나갔다. 밤은 깊었고 무릎을 스치는 한기는 더더욱 뾰족해져 갔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나는 삽질을 하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보기에 남자들은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보편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령 남자를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 남자의 이런 성격을 역으로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남자가 나를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다.

주경씨, 그녀는 그가 다니던 중장비 운전면허학원의 사무보조로 일하고 있던 여자였다.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었지만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가끔씩 창문 밖 풍경을 오롯이 바라보는 표정에선 뭐랄까, 함부로 오를 수 없는 높다란 담장 위에 핀 백목련의 기품과 분위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최 형사는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노트북 전원을 켰다.

봄이니까. 봄이니까. 최 형사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진짜 사랑은 그 사랑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창밖에선 또 한 번 난분분,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빗줄기는 굵지 않았지만 바람이 제법 불었다.

비는 사선으로 대기를 그어 그의 이마와 눈썹 위까지 와 닿았다. 노모는 그의 등에 한쪽 뺨을 기댄 채 말없이 업혀 있었다. 노모는 무겁지 않았으나 그래서 더 놓칠 것만 같았다. 노모의 검은색 털신에 초록색 잎사귀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날씨가 무더워 잠 못 이루는 밤,

남자한테 부채질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부채질을 하다 보면 남자도 졸음이 와서 어느새 손이 멈춘다. 그러면 남자의 손을 탁 하고 때린다. 남자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다시 부채질을 시작한다. 그럴 때가 좋다.

여자의 분출구는 한 가지가 아니다.

평생에 걸쳐 폭넓게 구석구석 이르러 있다. 따라서 여자의 욕구는 직접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것에 이르게 하는 환경과 상황의 충족이 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집이라는 말보다 방이라는 말이 더 와 닿는다.

우리는 서울에서, 대체로 가난한 줄도 모르고 가난하게, 임시라는 듯이, 큰 집에 관한 별다른 이상도 갖지 않으며 세를 받지 않고, 세를 내며 살고 있다. 서울의 방은 점점 작아지니, 가구다운 가구, 접시다운 접시, 스피커 다운 스피커는 방이 아니라 널찍한 카페에 가야 있다.

디자인은 역산을 정말 많이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에 비해 마케팅은 지금까지의 수치나 실적, 결과를 정리해 현재 상황에 반영시키는 작업이라 할 수 있죠. 과거의 일로부터 지금을 바라보는 것이 마케팅이고 '이렇게 될 것 같다'는 가설을 세워 거기서부터 역산해 가는 것이 디자인입니다.

오히려 한가로울 능력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나태의 징표이다.

한가로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과 비슷하기는 커녕 그것에 정반대되는 것이다. 한가로움은 기분 전환이 아니라 집중을 돕는다. 머무름은 감각의 집중을 전제한다.

결혼 생활이란 다음 날 가족이 먹을 신선한 아침 국을 매일 끓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 결혼 생활에서 실질적으로 쌓인 것은, 내가 끓여낸 십년 치 국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