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상실의 극복은 바쁜 일이나 웃음으로는 절대 성취되지 않아.

앞으로도 내 인생은 당신에 대한 회한과 배덕의 자책감으로 지배되겠지. 마음속으로 사과한다 한들 용서해주는 당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그쪽에서 당신이 나를 얼마나 욕하고 동정하든, 그 목소리 역시 내게는 들리지 않고. 인간은 죽으면 그뿐이지. 우리는 둘다 살아 있는 시간을 너무 우습게 봤어.

그러나 달콤한 시간의 과잉 섭취는 인생을 좀먹는다.

먹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하게 된다. 사치오에게는 이미, 그 정도로 해두는 게 좋다고 옆에서 훈계해주는 어른이 없다.

발을 헛디딘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런 말이 아니면 붙잡을 수 없는 곳에 서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슬아슬한 벼랑에서, 누가 어깨를 잡아줘서 겨우 걸음을 멈추는 때도 있는 겁니다. 아, 그러니 나 같은 사람도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심했죠. 너무 심했어요.

왜 우리는 소중한 것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지. 눈에 보이는 신호를 무시하고, 잡았던 손도 놓아버리고. 언제나 기회를 날려버리죠. 왜 이렇게 맨날 헛발을 디디고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지. 정말 끔찍합니다.

사치오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다.

가녀린 그 손을 꼭 잡고 함께 도망친다. 그들만 있으면 자신에게도 도망칠 권리가 생긴다. 살아 있어도 좋은 이유가 생긴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궁상을 떨고 있지는 않아.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형편없는 것도 아니고. 내게도 기회는 있어. 사람을 우습게 보면 안 되지. 당신의 죽음은 폭력이야. 나는 폭력에 굴하지 않아. 징징 짜면서 구질구질하게 살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신페이가 울 때 자신도 그렇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신페이라는 어린아이가 지금의 자신에게, 지금까지 만난 어떤 인간과도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한 건 아직은 자신이 그의 보호자라는 우위를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누군가에게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 또 자신이 '지켜주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얼마나 감미로운 일인가.

그런 기술을 터득하려 하다니 그건 잘못된 거야.

거부해야지. 그런 걸 정답이라고 하는 곳에 살 필요는 없어. 네가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게 정답이야. 대세가 전부는 아니라고.

내가 생각하기에 쓰무라는 그 위험 분자 아버지의 집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발견한 게 아닌가 싶다.

그 아이들에게 애정 비슷한 걸 느끼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래서 가장 위로받는 사람은 엄마 잃은 그 아이들도, 위험 분자 아버지도 아닌 쓰무라 본인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을 사랑함으로써 지금까지 자신이 저질러온 양심에 찔리는 온갖 일들을 꿈처럼 잊을 수 있으니까. 

가능하면 아무도 모르게 지금의 쓰무라 씨의 표정을 찍고 싶다.

쓰무라 씨의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저 납덩이같은, 빛이 없는 눈을.

그들은 지난주까지 몰랐던 걸 이번 주에는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들고 있죠.

우리는 그와 반비례하듯이 어느 부분은 쇠퇴하고 급기야 죽음에 가까워지고요. 그들 둘과 지내는 시간에는 똑같은 시간이 절대 없다는 것을, 나는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나쓰코의 세계를 거부했음에도, 나쓰코의 세계가 지닌 밝은 면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충실하게 생활했던 나쓰코는 나를 암담하게 했다.

마지막 전철을 놓쳤다.

놓쳤다기보다 1시간 간격으로 시계가 울어댔으니 알면서도 그런 것이다. 혼자서 그 밤길을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엉덩이를 들지 못했다. 두 녀석이 잠든 뒤 요이치 씨는 봇물이 터진 듯 유키 씨 얘기를 꺼냈다.

그래, 어차피 별거 아니겠지 하고 우습게 여긴 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다 잃어버리는 거지. 세계의 진화 따위보다는 보이는 걸 제대로 보는 게 사실은 더 어려운 법인데.

그것들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엄마와 살았던 기억을. 나는 욕실 청소를 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내 생활의 기억은?

어른들은 다 그래.

한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행복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계속되지 않으면 불만을 느끼고. 행복은 불행의 씨앗이다.

뭐 때문인지…….

사치오는 신음하듯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웬일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두 남자는 차들이 쌩쌩 오가는 큰 길가에서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빈 차' 불을 켠 택시가 그들 옆을 몇 대나 지나갔다.

아이들과 별 인연 없이 생활하는 어른에게는 조금 낯간지럽고 숨이 막힐 듯 달짝지근한 냄새.

이 집의 생활 전부, 아이들을 따라 시간이 흐르고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때로 아빠가. 정확하게 움직이는 시계처럼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그러나 매일 앞을 향하고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축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죽는 게 두려우면 사는 것도 두려워진다.

성실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진다. 요이치는 유키가 미웠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제멋대로 갑자기 죽어버린 유키가 미웠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이 사치오 또한 큰 재난의 피해자에게 남들처럼 안됐다는 마음과 동정을 품을 수는 있었지만,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었다는 명확한 자각은 거의 없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치 강 건너 어딘가에 사는 사람들만 같았지, 자신이 그 강을 건너게 되리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