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서울로 갈 짐을 들고 열여덟의 그녀가 옥수수밭을 부러 가로질러 시외버스를 타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한 세계를 떠나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부러진 옷수숫대들이 황폐한 밭에 무더기로 쌓여 있던 어느 겨울의 일이었다.

무슨 일을 주기적으로 하는 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과 급식시간에는 늘 선글라스를 낀다. 수업시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엎드렸다 일어났다 한다. 엄마도 주기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지금보다는 덜 중요했을 텐데. 수입은 일정한 주기로 들어와야 한다. 부모는 일정 시간에 집에 머물러야 한다. 삶에는 파도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일정한 간격으로 밀려왔다 밀려 나가야 한다.

가여운 세실리아.

그 마음 내가 전문이지. 밤은 오고 잠은 가고 곁에는 침묵뿐이고 머릿속은 시끄럽고 그러면서도 뭐 또렷하게 어떤 생각은 또 할 수 없어서 그냥 나 자신이 깡통처럼 텅 빈 채 살랑바람에도 요란하게 굴러다니는 듯한 느낌. 나는 세실리아의 손을 잡았다. 손은 아주 차가웠고 웬만한 남자 손만큼 컸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이름만 적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형태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조중균씨는 부끄러웠다.

"무료 아닙니다. 안 먹는다고 하면 돌려줍니다. 구만, 육천원"

조중균씨는 말 중간에 쉼표를 넣어 이상하게 끄는 버릇이 있었다.

내일 봐요, 하고 내가 사무실을 나가면 조중균씨는 일어나 자기 자리만 남기고 사무실 형광등을 모두 껐다.

그리고 그런 사무실의 어둠을 아주 따뜻한 담요처럼 덮고 원고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