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모든 이들의 젊음은 꿈이야.
일종의 화학적 광기야. 미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일종의 화학적 광기야. 미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이미 많은 것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절로 변해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한 아이러니를 품고 인생은 또 흘러간다.
여자는 어항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러고 나면 그다음에 할 일이라든가,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저절로 알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바짝 마른 입술만 깨물었다.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을 내 안에 영원히 가둬두려는 것처럼 너는 내 말을 가로챘다.
그 장면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내 안에 박혀 있을 거라고는, 그때의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떠날 사람이 누구인지 골라낼 수 있었다. 바퀴가 달린 가방이나 유난스러운 옷차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떠날 사람은, 뭐랄까, 떠날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나이쯤 되면 잠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되길 바랐는데.
'야 뭐 재밌는 거 없냐'의 세계. 운이 좋았다면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다다르게 된다. 이 회색의 대륙에.
나는 촌스러운 것이 좋다. 그래도 웃으면서 지내자, 사람이 소중하다, 이런 것들.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들. 명쾌해서 좋았다.
그런데 외투를 두 벌 샀다고 두 벌분의 행복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셈법이 이상하다는 증거이다.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외투는 진열장에서 이동하여 내 방 옷장에 걸리는 순간 보통의 외투가 되었다.
적당함은 분명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돌은 더 크고, 더 단단히 땅에 박혀 있다. 계속 이렇게 돌밭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 안의 중학생은 큰 배신감을 느꼈다. 열심히 하면 돌이 없는 또는 돌이 굉장히 적은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어른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왔기 때문이다.
내용이 전부 바뀌어버린 사전을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백지였다. 나는 단어의 정의를 잃은 사람 같았다.
자기가 사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새삼 다시 바라보는 세상은 설령 따분한 일상이었지만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만으로도 내가 찾아온 의미는 있었을지 모르지.
이것들이 사라져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
양상추가 양배추가 어머니가 사라진다면. 그런 상상을 하지 못했던 무지하고 어리석은 나. 그러나 지금은 안다. 세상에 뭔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있어도 사라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을.
시간, 색, 온도, 고독, 사랑. 인간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들. 인간을 규제하면서도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들. 그런 것들이야 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분명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무한한 미래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미래가 유한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내 안에서는 미래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평화가 시간이라는 규칙이 사라져서 만들어진 것인지, 평소부터 여기에 있었던 것인지 나로서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다만, 시계가 사라진 세상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자, 왜 그런지 아주 평온하고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신기한 일이다. 시작의 예감이 두 사람 사이에 공유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이별의 예감도 동시에 공유해갔다.
당연한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인간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뭔가를 얻으려고 한다. 그 정도면 그나마 낫다. 지금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뭐든 손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들 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로채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누군가가 얻고 있는 그 순간에 누군가는 잃는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위에 성립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그런 세상의 룰을 들려주었다.
지미 헨드릭스나 장 미셸 바스키아 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채 이루지 못한 뭔가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을 위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이 손과 발도 편의점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자, 유리창 속의 내가 비로소 의미 있는 생물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