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들은 개인의 사적 경험과 지리적 공간이 만나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장소일 터다.

그러나 장소의 의미는 좌표값으로 환산되고, 위치는 곧 계급으로 수직화된다. 좌표 값에 포박된 우리가 지닐 수 있는 곤 박탈감과 무력감 그리고 '고향'과 '생활'을 가지고픈 동경일 뿐. 삶이 점차 희박해져가는 이 도시를 영화가 사랑할 수 없음은 어쩌면 자명한 일이다.

세입자인 나는 결국 서울 어느 동네에서도 이웃을 만들지 않을 것 같다.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고 동네에 섞이지 못하는 대신 출퇴근길에 냉소적인 척 결국 음흉한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관음)할 것이다.

서울이라는 공동체에서 나는 어떤 구성원일까?

출산률 상승에 기여할 생각이 전혀 없는 40대 독거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분리수거 개상이 됐을지 모른다. 물론 나 역시 이 도시에서 트집 잡고 싶은 구석이 한 다스쯤은 된다.

집이라는 말보다 방이라는 말이 더 와 닿는다.

우리는 서울에서, 대체로 가난한 줄도 모르고 가난하게, 임시라는 듯이, 큰 집에 관한 별다른 이상도 갖지 않으며 세를 받지 않고, 세를 내며 살고 있다. 서울의 방은 점점 작아지니, 가구다운 가구, 접시다운 접시, 스피커 다운 스피커는 방이 아니라 널찍한 카페에 가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