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쓰지 않고 이름만 적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형태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조중균씨는 부끄러웠다.

"무료 아닙니다. 안 먹는다고 하면 돌려줍니다. 구만, 육천원"

조중균씨는 말 중간에 쉼표를 넣어 이상하게 끄는 버릇이 있었다.

내일 봐요, 하고 내가 사무실을 나가면 조중균씨는 일어나 자기 자리만 남기고 사무실 형광등을 모두 껐다.

그리고 그런 사무실의 어둠을 아주 따뜻한 담요처럼 덮고 원고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