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마지막 순간에 소중한 사람이나 둘도 없이 귀한 것들을 깨달았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알았어요.

자기가 사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새삼 다시 바라보는 세상은 설령 따분한 일상이었지만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만으로도 내가 찾아온 의미는 있었을지 모르지.

내가 없애버릴 수도 있는 것들.

이것들이 사라져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양상추가 양배추가 어머니가 사라진다면. 그런 상상을 하지 못했던 무지하고 어리석은 나. 그러나 지금은 안다. 세상에 뭔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있어도 사라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을.

그 사랑이라는, 인간 특유의 귀찮고 거추장스럽고 그러면서도 인간을 절대적으로 지탱해주는 그것은, 시간과 아주 비슷하다.

시간, 색, 온도, 고독, 사랑. 인간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들. 인간을 규제하면서도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들. 그런 것들이야 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고, 미래에서 현재로 흘러온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분명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무한한 미래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미래가 유한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내 안에서는 미래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나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평화가 시간이라는 규칙이 사라져서 만들어진 것인지, 평소부터 여기에 있었던 것인지 나로서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다만, 시계가 사라진 세상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자, 왜 그런지 아주 평온하고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우리는 스물여섯 시간 동안 이별의 예감을 공유해갔다.

신기한 일이다. 시작의 예감이 두 사람 사이에 공유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이별의 예감도 동시에 공유해갔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겠지."

당연한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인간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뭔가를 얻으려고 한다. 그 정도면  그나마 낫다. 지금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뭐든 손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들 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로채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누군가가 얻고 있는 그 순간에 누군가는 잃는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위에 성립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그런 세상의 룰을 들려주었다.

나는 아직 서른 살이다.

지미 헨드릭스나 장 미셸 바스키아 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채 이루지 못한 뭔가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을 위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