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그녀가 꾸던 꿈의 일부인 것 같았다.

얼마 전 큰 자극을 받고 깨어난 꿈, 그리고 깨어 있는 지금 이 시간에, 한때 너무도 견고했던 그의 존재에는 어떤 실체나 형체도 없었다. 그것은 그저 낮과 밤 매 순간의 끝자락에 드리운 그림자에 불과했다.

토니, 짐, 어머니, 이 세 사람 모두 그녀가 상처만 입히게 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빛과 명쾌함으로 둘러싸인 순수한 사람들이고, 그들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은 어둡고 불분명한 그녀 자신이므로.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구석구석 생생한 것들로 꽉 찬 듯했던,

너무도 견고하게만 보이던 것을 되찾으려는 사람처럼, 아일리시는 그 모든 것을 찬찬히 되새겨 보았다.

그건 분명 편지 쓰기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 쓴 글이었다.

그렇지만 토니는 거기에 자기만의 어떤 것, 따스함, 친절, 세상에 대한 열정을 덧입히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그에게 깃든 어떤 것이, 그 편지에도 배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며 그녀가 떠나 버릴까 하는 조바심 같은 것이.

아일리시를 울게 한 것은 신부의 목소리에 배인 부드러움,

그녀의 눈을 피하는 신부의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그리고 이런 일에 대비해 신부가 주머니 속에 준비해둔 게 분명한 크고 깨끗한 흰 손수건을 내밀자 아일리시는 그를 밀치면서 거의 히스테리에 가깝게 흥분했다.

아일리시는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 방금 일어난 일을 멈추거나 신부가 말을 못 하게 막을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그녀는 플러드 신부에게 여기서 나가라고, 다시는 이런 식으로 찾아오지 말라고 말할 뻔했으나,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인지 곧바로 깨달았다. 그는 여기 있었다. 그녀는 신부가 한 말을 이미 들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지난번 여자 친구와 대관람차에 탔다가 결국 헤어졌다는 암시는 전혀 비치지 않았다.

아일리시는 이런 행동, 대관람차를 타지 못하게 말리는 편안하고 태연한 그의 태도, 예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 그 귀여운 이중성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에게도 비밀이 있고 조용히 그 비밀을 지키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까지 했다.

넌 향수병에 걸렸어.

그 뿐이야. 누구나 그 병에 걸리지. 하지만 빨리 지나간단다. 어떤 사람의 경우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지나가지. 그 병보다 힘든 건 없어. 해법은 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을 만드는 것, 그리고 바삐 지내는 거란다.

가만히 지켜보던 아일리시는, 언니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건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벌써부터 자기가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이 방을, 언니를, 이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길어지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미국행이 암묵적으로 예정되었음을 아일리시는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