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단지 소설 속의 세계라고 하면 어떨까.

독자가 보자면 나나 당신들이 있는 이 세계는 가능세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겠지. 당신들도 알잖아. 여기가 소설 속의 세계라는 것을.

당신들의 절멸은 참으로 아름다워.

당신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내 눈에는 참으로 아름답다는 말이야. 당신들에게는 그걸 위안으로 삼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겠군.

당신이 사고해야 하고, 그을 써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은 대체 누가 내린 지령인가,

그 정당성은 어떤 것인가, 이런 물음이야말로 참으로 열린 질문이지.

그런데 당신들의 이 나라는 이제는 거의 무종교 국가여서 그런 일이 없잖아.

애초에 신이 800만이나 있는 다신교 국가인 데다 불교, 기독교, 옴진리교까지 있으니 거의 무종교나 마찬가지지. 그런 나라라는 사실에 당신들은 도리어 기뻐해야 하지 않나?

"그랬구나. 선생님은 신이셨어."

잠시 후 다카스키 미네코는 몹시 감동한 얼굴로 교수를 보았다. 신이니 예언이니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지 않지만, 왠지 믿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세계에 그 정도는 존재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기이한 일이 생기면 나는 왠지 도리어 마음이 편해진단 말이야.

'아직도 영문 모를 일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나 미래를 꼼꼼하게 계산하고 분석해서 결정하고 마는 나쁜 버릇이 있어. 자기 일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야.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자"라고 말하고 두 사람은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은 온갖 꿈을 꾸었는데, 자신들이 하려고 하는 행위를 노골적으로 정당화하는 장면들이 여러 꿈에 조각조각 박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