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히로사와의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빈자리를 치우던 웨이트리스가 바닥에 유리잔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볼품없는 남자 둘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부러 유리잔을 떨어뜨려존 것인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보았다.

'히로사와 요시키는 살해당했다.'

그렇게 썼다가,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선을 북북 그었다. 전부 털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집에 찾아가는 게 목적이라고 하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살까봐 거짓말을 했지만,

이런 거짓말이 쌓여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후카세 가즈히사는 살인자다.'

호흡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서서히 낯빛을 잃어가는 자신을 저만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자신도 있었다. 이것은 아무 예고 없이 튀어나온 말이 아니다. 처음부터 여기로 갈무리되도록 짜여 있었던 것이다.

별안간 굵은 덩굴의 뿌리가 뚝 끊겼다.

압박감에서 해방되었다. 불안을 잘라낸 것은 불쾌감이었다. 비오는 날, 누군가 흙발로 다다미방에 들어온 듯한 불쾌감.

후카세가 원두 종류를 맞혔을 때, 그를 흘깃 쳐다보는 미호코의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단하시네요, 라거나 어떤 맛인데요? 하고 묻지는 않았다.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마음은 먼 곳에 있는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는 옆얼굴이 왠지 좋아, 후카세 쪽에서 그녀를 흘깃거리기만 했다.

커피에 꽃이나 과일 풍미가 난다니 무슨 뜻일까?

점원에게 물어보면 그만이겠지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모르면 묻고,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거절할 수 있었다면 후카세는 저금 더 편히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각만큼은 조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