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솔직히 분석이란 것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가끔 나중에 생각해보면 거의 틀렸더군요(웃음). 분석에 적용하는 팩터가 하나라도 많거나 적으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죠. 그렇게 재미없는 오류는 더이상 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물론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가끔 나중에 생각해보면 거의 틀렸더군요(웃음). 분석에 적용하는 팩터가 하나라도 많거나 적으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죠. 그렇게 재미없는 오류는 더이상 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물론 소설에는 이야기적 장치, 등장인물, 구조 등 여러 오소가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문장으로 귀결합니다. 문장이 바뀌면, 새로워지면, 혹은 진화하면 설령 똑같은 내용을 몇 번씩 되풀이해도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문장만 계속 변화하면 작가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많아야 열 권 남짓일까. 그리고 결국 그 몇 안 되는 책이 우리 정신의 대들보가 되어줍니다.
많은 사람은 그걸 몇 번이고 읽으며 찬찬히 곱씹죠.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해야 하고. 그래서 실제로는 이쪽으로 갔지만 혹시 저쪽으로 갔더라면 지금 이렇게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적 존재로서의 내가 존재하죠. 그것이 소설 주인공에 투영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하곤 해요.
작가가 살아 있으면 문체도 그에 맞춰 살아 숨쉬죠. 그러니 매일 변화를 수행할 테고요. 세포가 교체되는 것처럼 그 변화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지 않으면 자기 손에서 떠나갑니다.
바로 지금이다, 라는 적절한 포인트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이야기는 해석이 불가능하니까 이야기인 거죠. 여기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면서 작가가 일일이 포장을 풀어헤치면 재미고 뭐고 없어요. 독자는 맥이 빠질 테고요. 작가조차 잘 몰라야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의미가 자유롭게 부풀어나간다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신뢰감과 친밀감을 낳는 건 말투예요. 말투나 문체에 흡입력이 없으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죠. 물론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말투에 매력이 없으면 사람들은 귀기울여 주지 않습니다.
처음에 일단 완성해놓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치고, 갈고 닦고, 이대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손대는 과정에서 점점 나 자신만의 리듬, 잘 울리는 보이스를 찾아가죠. 눈보다는 주로 귀를 사용하며 고칩니다.
소설을 쓴다기 보다, 부엌에서 굴튀김을 하나하나 튀기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아요.
보이스를 한층 리얼하게 만들기, 그게 우리 소설가의 중요한 일이죠. 저는 이걸 '매직 터치'라고 불러요. 만지는 것이 전부 황금이 되는 미다스왕 이야기 있죠? 마찬가지예요. 많건 적건 이 '매직 터치'가 없으면 사람들이 돈을 내고 읽어줄 만한 문장을 쓰지 못해요. 물론 작가라면 제각기 다른 '매직 터치'를 가지고 있지만요.
슬슬 깨워야겠다 싶을 때 적당한 비유를 가져오는 거죠. 문장에는 그런 서프라이즈가 필요해요.
늘 하는 말이지만, 뛰어난 퍼커션 연주자는 가장 중요한 음을 치지 않아요.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속속 변해가죠. '이건 이러하다'라고 단순하게 고정해서 단언할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젠더라는 것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게이, 레즈비언, 성 동일성 장애 등, 젠더에는 각각의 중간적 젠더를 포함한 그러데이션이 있죠. 그것들이 상황에 따라 자유로이 교체되고요. 제 안에도 여성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남자라도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요. 저는 그런 요소를 모두 활용해야 소설이 활성화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