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애들이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돈과 안정만 좇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의미였다. 나는 나의 꿈을 따라가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두려웠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같다.

우리 셋은 보이지 않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안방에서 함께 잤다.

불을 끄고 천장을 보면서 하던 이야기들. 그전에는 하지 못했던 말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말들도 용기를 내서 주고받았다. 마치 처음 사귀는 사람들처럼.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사람들처럼.

가끔씩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오면 받지 않거나 건성으로 받곤 했다.

할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냥 당연히, 원래 그렇게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하나뿐인 이단 우산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성격 급한 할아버지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펴지는 우산이었지만 버튼도 들지 않았고 수동으로 펴지지도 않았다. 비는 굵은 방울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날씨에 우산 하나 제대로 챙겨오지 않은 할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골목 끝에 편의점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우산을 살 만한 돈이 없었다.

점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고, 엄마와 할아버지를 찾아가도, 따로 전화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영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오만이 그 사람들을 얼마나 쓸쓸하게 했을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